소지섭의 '광장'은 한국판 존윅이 될 수 있을까? 🕶️ 두 세계관 전격 비교 분석!

은퇴한 전설이 복수를 위해 돌아온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전 세계 액션 팬들의 심장을 뛰게 만든 이름, 바로 '존윅'입니다.

그런데 여기, 그와 놀랍도록 닮은 설정으로 혜성처럼 등장해 공개 직후부터 넷플릭스 순위 상위권을 휩쓴 한국 시리즈가 있습니다. 바로 소지섭 주연의 '광장'이죠. '광장'을 둘러싼 '한국판 존윅'이라는 수식어는 단순한 찬사일까요, 아니면 피상적인 유사성에 기댄 평가일까요? 👻

두 작품은 한 남자의 처절한 복수극이라는 공통된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발을 딛고 있는 세계의 법칙, 폭력을 다루는 철학, 그리고 주인공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동기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이 글에서는 '광장'과 '존윅'의 세계관을 세포 단위까지 해부하며, 두 작품이 과연 같은 길을 걷고 있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지 심도 있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이 비교 분석은 단순한 겉모습을 넘어, 두 세계를 지배하는 영혼의 차이를 드러낼 것입니다.

복수의 촉매: 신화적 상실과 현실적 비극
모든 위대한 복수 서사는 주인공을 다시 피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촉매'에서 시작됩니다. 남기준과 존윅, 두 전설을 움직이는 동기는 그들의 세계관만큼이나 극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남기준(소지섭): 형제의 피로 얼룩진 귀환
'광장'의 남기준은 스스로 아킬레스건을 끊고 조직 세계를 떠났던 인물입니다. 그의 평화는 조직 '주운'의 2인자 자리까지 올랐던 친동생 남기석(이준혁)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산산조각 납니다.

남기석-이준혁분

 

기준의 복수는 지극히 개인적인 슬픔에서 비롯되지만,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그가 떠나온 세계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향합니다. 동생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그는 라이벌 조직 '봉산'과의 관계, 조직 내 배신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조종하는 배후를 찾아내야만 합니다. 그의 복수는 단순한 응징이 아니라, 부패한 조직의 정치판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에 가깝습니다. 즉, 그의 여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직이라는 시스템 내부의 문제입니다.

존윅(키아누 리브스): 죽은 아내가 남긴 마지막 온기
반면, 존윅의 복수는 훨씬 더 신화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에서 촉발됩니다. 사랑하는 아내 헬렌을 잃고 암흑가에서 은퇴한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아내가 죽기 전 마지막 선물로 보낸 강아지 '데이지'였습니다.

러시아 마피아 보스의 철없는 아들이 그의 차를 훔치고 강아지를 죽인 행위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존의 마지막 남은 구원과 평온한 삶의 기억을 더럽힌 신성모독이었습니다. 그의 분노는 조직의 권력 다툼이나 정치적 음모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는 오직 개인적인 상실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움직이며, 그 과정에서 그가 속했던 거대한 지하 세계의 규칙을 의도치 않게 깨뜨리게 됩니다. 존윅의 복수는 시스템 외부에서 날아와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거대한 충격파와 같습니다.

지하 세계의 건축학: 신화적 질서 vs. 현실적 부패
두 시리즈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그들이 구축한 범죄 세계의 구조와 철학에 있습니다. '존윅'이 현실과 분리된 판타지 세계를 창조했다면, '광장'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극사실적으로 투영합니다.
존윅 유니버스: 킬러들의 기사도와 절대 규칙
'존윅'의 세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신화입니다. 이 세계는 몇 가지 절대적인 요소로 지탱됩니다.

* 최고 회의(High Table): 전 세계 12개의 거대 범죄 조직 수장들로 구성된, 사실상의 킬러 세계 정부입니다. 이들은 절대적인 권력으로 이 세계의 법칙을 만들고 집행합니다.

* 콘티넨탈 호텔: 살인이 엄격히 금지된 신성불가침의 중립 지대입니다. 이곳은 킬러들의 안식처이자, 무기 소믈리에, 방탄 양복 재단사, 의료 서비스 등 모든 것을 제공하는 네트워크의 허브입니다. 이 규칙을 어기면 '파문(Excommunicado)'이라는 최악의 벌을 받습니다.

* 금화와 마커: 킬러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금화'는 단순한 화폐를 넘어 소속감과 신뢰의 상징입니다. 피의 맹세인 '마커'는 한번 맺어지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절대적인 계약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존윅'의 세계를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 그들만의 법과 질서, 심지어 명예까지 존재하는 판타지 영역으로 만듭니다.

광장 유니버스: 기업화된 조폭과 부패한 공권력의 유착
'광장'의 세계에는 신성한 규칙이나 낭만적인 기사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냉혹한 현실과 배신만이 있을 뿐입니다.

* 경쟁하는 기업형 조직: 서울의 암흑가는 '주운'(허준호)과 '봉산'(안길강)이라는 거대 조직이 양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깡패 집단이 아니라 기업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들의 싸움은 영역 다툼을 넘어선 기업 전쟁에 가깝습니다.

웹툰 원작

* 부패한 국가 시스템: '광장'에는 콘티넨탈 호텔 같은 중립 지대가 없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부패한 공권력이 차지합니다. 서울청 총경 '차영도'(차승원)는 두 조직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기생충 같은 존재이며 , 현직 검사이자 메인 빌런인 '이금손'(추영우)은 자신의 법적 권력을 범죄에 악용해 아버지마저 제거하고 정점에 서려는 탐욕의 화신입니다.

차영도-차승원분

* 사라진 '광장': 원작 웹툰의 핵심 설정이었던, 조직 간의 공식적인 결투장 '광장'이 드라마에서는 거의 삭제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야기는 신화적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기업 암투와 정치 스릴러의 색채를 더욱 짙게 띠게 되었습니다.
결국 '존윅'의 세계가 질서와 규칙을 어긴 자를 벌하는 신화라면, '광장'의 세계는 배신과 부패가 곧 생존의 규칙인 냉소적인 현실 그 자체를 보여줍니다.


폭력의 철학: '건푸(Gun-Fu)'와 '원펀치' 액션의 대결
주인공의 액션 스타일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그의 캐릭터와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는 핵심적인 언어입니다. 두 전설의 전투 방식은 그들의 철학만큼이나 다릅니다.

존윅의 '건푸': 살인의 미학
'존윅'을 상징하는 '건푸(Gun-Fu)'는 총(Gun)과 쿵푸(Kung-fu)의 합성어로, 유도, 주짓수 같은 근접 격투술과 전술적 사격술이 완벽하게 결합된 액션 스타일입니다. 그의 액션은 무자비한 효율성(정확한 헤드샷), 전술적 현실감(재장전마저 액션의 일부로 소화), 그리고 마치 발레처럼 우아한 움직임이 특징입니다. 존윅의 폭력은 그가 수십 년간 연마한 '기술'이자 '예술'입니다. 그는 분노에 찬 야수가 아니라, 자신의 기술로 적들을 정교하게 분해하는 장인(Artisan)에 가깝습니다.

남기준의 잔혹함: 복수의 무게
반면, 드라마 속 남기준의 액션은 '마치 '범죄도시'의 마동석을 연상케 할 정도'로 묵직하고 압도적인 물리력에 초점을 맞춥니다. 원작 웹툰에서 보여준, 계단 같은 지형지물과 개조한 야구방망이를 활용하는 전략적인 액션 대신, 드라마는 보다 직선적이고 파괴적인 '원펀치' 스타일을 선택했습니다. 이 스타일은 남기준을 기술자가 아닌, 순수한 분노와 슬픔이 응축된 자연재해 같은 존재로 묘사합니다. 그는 적을 정교하게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압도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부수며 나아갑니다. 그의 폭력은 기술이 아닌, 복수심 그 자체의 물리적 발현입니다.

각색의 무게: 원작 팬들의 아쉬움과 제작진의 야망
'광장'이 '존윅'과 비교되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이 웹툰 원작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광장'은 탄탄한 스토리와 독창적인 액션 연출로 호평받았던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원작의 설정을 대거 각색했고, 이는 원작 팬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낳았습니다. 특히 원작의 핵심이었던 '광장 결투'의 부재와 액션 스타일의 변화는 "원작에 대한 모독"이라는 격한 비판까지 불러일으켰죠.

이러한 변화는 제작진의 전략적인 선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배우 소지섭이 "원작보다 뛰어난 작품을 만들려 했다"고 밝혔듯 , 제작진은 원작의 독특하지만 다소 마니악할 수 있는 설정을 덜어내는 대신,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더 익숙하고 보편적인 '전설적인 복수자' 서사를 채택했습니다. 즉, '광장'의 '존윅화'는 한국형 느와르 웹툰을 글로벌 시장에 맞게 재단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필연적인 결과일 수 있습니다. 원작의 독창성을 잃었다는 아쉬움과, 더 넓은 대중성을 확보했다는 성과는 바로 이 지점에서 교차합니다.

느와르의 새로운 풍경, 익숙함과 신선함 사이 🌃
결론적으로, '광장'을 단순히 '한국판 존윅'이라고 부르는 것은 작품의 본질을 놓치는 것입니다. '광장'은 '은퇴한 전설의 귀환'이라는 '존윅'의 성공적인 뼈대를 빌려왔지만,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것은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한국형 느와르의 피와 살입니다.

신화적인 규칙이 지배하는 판타지 세계의 '존윅'과 부패한 현실 권력이 모든 것을 삼키는 '광장'. 정교한 기술로 살인을 예술로 승화시킨 장인과 압도적인 힘으로 복수심을 폭발시키는 야수. 두 작품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지만 전혀 다른 풍경을 그리며 각자의 길을 달렸습니다.

'광장'은 거대한 전설의 그림자 아래 서 있지만, 그 덕분에 자신만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이 작품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담은 K-느와르 서사를 세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가장 성공적인 글로벌 액션의 문법을 영리하게 차용한 야심찬 시도입니다. 익숙함 속에서 발견하는 이 신선한 조합이야말로, '광장'이 논란과 화제 속에서도 자신만의 가치를 증명하는 이유일 것입니다.